어린 시절 가정집에서 태어난 푸들을 데려온 적이 있는데요. 손바닥만 한 말랑거리는 친구가 발라당 배를 까고 어디나 누워 잤어요. 이 조그마하고 겁 없는 생명체는 뭘까, 약간 어이없으면서도 무척 사랑스러웠어요. 요즘 여기저기서 예뻐해 줘서 이 푸들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봤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곳으로 흘러가서, 아주 편하게 마음을 풀어놓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을 알고, 거기로 나를 데려가는데 망설임이 없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꽤나 어려워요. 그래도 어떤 경험이든 처음이 어렵고, 자주 해서 길이 나면 쉬워지니까요.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재밌고, 꽤 괜찮은 삶으로 가는 길을 내고 흘러가길 바라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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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느릿느릿 글을 써요. 내 글의 목적이 뭘까, 하는 생각에 멈췄다가, 관성대로 쓰던 방식으로 쓰게 될까 봐 멈칫하고, 더 찰떡같은 표현은 없을까 질문해 보면서요. 익숙한 언어 안에서 돌려가며 사용하지 않게, '모자무싸'의 대사처럼 국어사전이라도 1독 해야 하나 싶어요.
5월의 어느 한 주는 이렇게 흘러갔어요.
5/5 천안 '시안'에 머문 날
5/6 난 꽃꽂이 클래스
5/7 일룸 '더 모션 클럽'에서 '센티멘탈 밸류' 시청
5/8 러닝화 구매, 스시와 전골을 먹은 날
5/9 외할아버지의 집들이
5/10 방탈출
5/11 글쓰기 수업
5/12 저녁 식사
5/13 이슬아 작가 강의
5/14 상무님과 회식
5/15 라운지 돌돌의 '수선조형' 클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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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 시안의 정원
14년 동안 시안의 정원은 계속 변화해 왔어요. 10년간 소나무 동산이 있었던 곳에는, 이제 시안 갤러리가 들어섰어요. 자연스럽게 온갖 작물이 섞여 자라던 작은 주말농장은 마당의 가장자리에 새롭게 자리 잡았어요. 그리고 새롭게 조성한 정원에는 나날이 새로운 꽃과 조명이 들어서며 계절감을 잔뜩 느낄 수 있게 해 줘요.
오랜만에 시안에 방문했어요. 보라색 꽃잔디가 예쁜 카펫을 깔아놓은 듯했어요. 늦봄의 색을 가득 머금은 정원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그렇게 명자꽃, 진달래, 영산홍, 할미꽃, 백리향, 매화, 배꽃, 살구꽃, 자두꽃, 작약, 목단, 갈대, 목화까지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다 보면 한 해가 가 있어요.
프랑스 여행을 가는 딸을 따라가서 정원이 예쁜 집에 머물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우선 정원이 예쁜 국내 숙소를 다녀오기로 했어요. 타샤 튜터처럼 늙을 작정인 것 같은 엄마 옆에서 저도 정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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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그냥 미치게 좋은 걸 할 것
"아 행복해, 같이 미칠 수 있는 이런 관계가 있다는 게" 모자무싸에서 나온 대사예요. 미친 사람들이 좋아요. 똘기 있는 곰같이, 자신의 쪼를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이요. 감정과 생각에 취해서, 삶을 마구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이들을 곁에서 보는 것 만으로 때로는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내달리고 싶은 방향을 따라갈 줄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간, 글, 노래 그리고 개발의 언어로도 그 소재는 다양하겠지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지는 새로운 걸 내놓고 싶어요. 이번 주만 해도 여러 창작물들을 만들며 사부작거렸는데, 하나씩 소개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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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3. 꽃꽂이를 빙자한, 돌 꾸미기
난초로 꽃꽂이를 처음 해봤어요. 그런데 식물을 옮겨 심는 건 금방이었고, 사실 메인은 돌 꾸미기였어요. 엄청 잘 그려지는 펜으로 돌에 그림을 담았어요. 잔뜩 웅크리고 조그마한 돌에 한가운데에, 더 작게 귤, 우주선, 지구, 콩눈과 용신목 등을 그렸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수집하듯이 모으는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며, 해맑게 엄청 좋아라 하며 몰두했어요.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떠올리고, 그려 넣고, 글로 쓰고, 모으는 건 행복한 일이었어요.
요즘 작은 그림들을 다이어리, 노트, 휴지나 영수증에도 끄적끄적 그리는 걸 자주 해요. 보는 사람마다 이모티콘을 내보라고 해서 다시 도전해 보려구요. (작년에 여러 번 도전했다가 떨어졌거든요. 재도전하고 성공한 뒤, 그동안의 실패담까지 한 번에 가져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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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4. 수선조형, 특별한 색들의 세상으로
첫 수선조형을 해봤어요. 천이 물감으로 보였던 시간,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사랑스러운, 동그란 느낌으로 귤 하우스(제 집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어요.)와 시안의 모습을 담아냈어요.
각자의 개성이 조각조각 이어져서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제가 만들고 스스로 너무 뿌듯하고 기분 좋아서 보물처럼 안고 집에 왔어요. 주변에 보여주니 색감이 너무 예쁘다고도 하고, 또 아무 감흥이 없어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저는 계속 만족스러웠어요.
부엌과 거실 사이 동그란 아치 옆에 책장을 짜 넣었어요. 그 안에 제가 처음 컬렉팅한 그림, 엄마가 생일 선물로 준 도자기, 그리고 제가 만든 수선조형 작품을 놓아두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는 나만의 선반을 가지고 싶었고, 완성해 가는 중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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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5. 글쓰기와 상처의 관계
글쓰기 수업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같이 읽고, 쓴 글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눴어요. 저는 고통에 대해 글을 써갔어요. 아직 제 고통을 내놓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도, 이 세상을 믿는 것 같지도 않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뒤 고통이라는 주제로 여러 대화가 이어지다가, '글 쓰는 사람에게 고통은 필수적인가요?'라며 누군가 제가 내내 마음속에 무겁게 가지고 있던 질문을 꺼내줬어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삶에 고통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통쾌한 답을 주셨어요.
고통이 아니라 호기심과 재미같이 긍정적인 에너지도 글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의 기질이 각기 다르듯이 글쓰기의 원천도 다 다른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상처받아야 좋은 글이 나오고, 글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통해 성장한다는 편견을 싫어하신다고도 말해주셨어요. 상처를 한가득 받아본 사람이 진심으로 해주는 말 같아 더 와닿았어요.
이어서 그럼 재미나 행복을 동력으로 쓴 글이 뭘지 질문하다가, 한 분이 도시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적은 글을 추천해 주셨고, 혹시 제 글과 결이 비슷한 작가님일까 싶어서 바로 구매했어요.
글을 왜 같이 봐야 할까, 의미가 있는 시간일까 싶었어요. 대화 후에,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꽤나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는 행복할 때 글을 잘 써요. 기분이 좋을 때 말랑하게 생각이 연결되고, 질문이 쏟아나요. 물론 엄청난 분노로 글을 쏟아낼 때도 있었고, 앞으로 슬픈 일이 있다면 그 감정을 글로 풀어낼 것 같아요.
그래도 중요한 건 내 경험을 잘 들여다보고 소화해 내고 의미를 찾는 것이지, 글을 쓰기 위해 필수적인 경험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화 끝에 위로받는 느낌이 들고, 내 감정의 결을 더 치밀하게 하고 제가 느끼는 세상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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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6. 우주, 바다, 숲, 도시의 소리를 한 자리에 모으면,
그동안 살아온 생에 대해 샅샅이 알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경험들을 정말 많이 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왕창 하고 있을 언니가 있어요. 일룸에서 하는 팝업을 추천해 줘서 다녀왔어요. 저는 누워서 <센티멘탈 밸류>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로 서문을 여는 영화의 구성도 좋았지만, 공간 전체를 활용한 영상과 사운드를 잊을 수 없어요. 특히 초반에 도시와 풀밭, 물속, 우주를 연출한 부분은 애정하는 이들을 모두 불러 같이 보고 싶을 정도로 낭만적이었어요.
요즘 오감을 깊게 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듣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제 스스로도 아주 멋지게 꾸미고 싶고요. (제 취향대로 마구 입었더니, 종종 금융권이 아니라 예술하는 사람 같다는 제 기준 꽤 뿌듯한 말도 종종 들어요.) 오감을 고루 자극해 준 팝업이라 저도 이런 경험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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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5. 나와 불화한 사람들
어떤 공동체에서 퇴출당한 경험, 배제된 경험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조직에 속하면 내가 쉽게 설명되지만, 반대로 어떤 집단 속에서 불화하면, 그들과 다른 나를 어렵게 이해해 나가야 한다고요.
인정받지 못하면, 힘들어하면서도 그만큼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어요. 그렇게 미해결 된 욕구를 동력으로 내달리면서 쑥 컸던 것 같아요. 어쩌면 생명력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요즘 능숙함과 관성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굴리면서, 머리만 대면 깊은 잠에 빠지는, 안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폭발적인 변화보다 삶의 경험을 찬찬히 쌓아가면서요.
안온한 상태가 제일 좋아요. 그렇지만 마음에 파장을 만들어내는 경험도, 그 시간이 나를 돌이킬 수 없게 해치지 않는다면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두 상태를 비교하면서 살아내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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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6. 평생 가지 않을 세상, 접점 없는 사람
이슬아 작가의 '운동과 글쓰기'라는 강의를 들었어요. 연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어요. 웬만한 변수들을 즐거워해요. 동시에 그 변수들을 담기 위해 상수처럼 두려고 하는 게 있어요. 좋은 기분을 위한 운동과 잠이에요. 말랑한 기분으로 삶의 변화를 스트레스가 아니라, 재미로 받아들이려면 이 둘이 아주 중요해요.
주 2회 필라테스, 월수는 점심 요가, 화목은 점심 클라이밍 수업을 해요. 일정에 따라 자주 조정하고, 취소하고 하지만 그래도 주 3~4회 이상 운동하려고 이렇게 잡아뒀어요. 몸과 마음은 직선도로처럼 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서, 앞으로 더 건강한 몸으로 단련하려고요.
또 작가님이 트레이너 선생님과 관계 맺으면서 영원히 마주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남자 유형을 경험하고 있다는 부분도 재밌었어요. 영원히 끝없이 신체를 단련하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세계, 섬세한 사유와 감정의 언어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신 것 같았어요.
듣다 보니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졌어요.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인지하고 관계 맺는 건 어떤 느낌일지, 올해는 지난 시간들 동안 절대 하지 않았던 도전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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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뭐든 자세히 보고, 매일매일이 달라지는 걸 느끼려고 해 봐요. 그러면 같은 거리와 사람이라도 다른 면이 보여요. 똑같은 하루가 없구나, 깨달으면서 오늘을 감사히 살아내고 싶어 져요. 괜히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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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드림 essayhee1@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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